신명기 8장 11-18절 “충성된 그리스도인2-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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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됩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됩니다.
6월 주제 - ‘충성된 그리스도인’
1주 ‘영적게으름-나태’
2주 ‘영적우월감-교만’
예수 동행을 가로막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죄는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근본적인 악덕이며 다른 모든 악덕을 낳습니다. C. S. 루이스는 교만을 "철저히 반 하나님적인 마음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onathan Bdwards)는 자신이 쓴 《부흥론》에서 교만을 "세상에 들어온 최초의 죄이며, 마지막으로 뿌리 뽑힐 죄요, 하나님의 가장 완악한 원수이며, 마귀의 첫 자식”이라고 칭했습니다.
본래 교만은 초기 여덟 가지 목록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수도사들이 금식하며 탐식을 끊었습니다. 음욕도 피했습니다. 소유를 포기하며 탈옥도 버렸습니다. 열심히 노동하며 나태도 극복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악한 생각과 싸우며 이겨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서 가장 끈질기게 괴롭히며 교묘하고도 은밀하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영적 교만이었습니다.
금식하고, 물질도 내려놓고, 음욕도 물리치고, 노동하며 성실하게 살고 났을 때 슬며시 드는 생각이 무엇일까요?
'너 참 대단하다. 너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역시 너는 저 사람 들과는 달라.’ 이것이 바로 영적 교만이요.
영적 우월감입니다. 탐심과 음욕과 분노와 나태의 죄를 다 이긴 것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다가오는 죄가 교만입니다.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교만의 반대인 겸손만으로는 교만을 온전히 치유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만과 겸손의 사다리는 병행한다."
겸손해질수록 그 겸손함 때문에 교만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추락할 위험이 더더욱 커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겸손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자기 자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그 자신은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교만 중에서도 영적 교만이야말로 사탄의 가장 주된 특징이라고 지적합니다. 왜 대천사였던 자가 사탄으 로 타락하게 되었습니까? 그가 하나님 바로 옆에서 그분의 얼굴 을 뵈었고, 그분과 신적 지식을 가장 많이 알고 경험했다고 확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가깝다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그분 바로 곁에서 그분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특권 중에 특권일 것 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특권과 영적 지식과 경험들이 대천사로 하여금 타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더 높고도 깊은 영적 지식과 경험들이 그를 자고하게 해 자신을 마치 하나님인 양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마귀가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공격하는 죄입니 다. 마귀는 자신의 강점 때문에 교만해졌고 타락했습니다. 그래 서 마귀는 사람들의 강점을 부추겨서 치켜세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결국 추락하게 만듭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의도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강점,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것이 목적이 된다면, 그 선한 의도는 얼마든지 지옥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자 했던 이유는 탐식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만족하지 않고 그분의 자리에 올라 그분과 같이 되려 했던 오만한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과 목적이 거대하고 클수록 행여 선행이라는 명분과 함께 교만의 죄가 은밀하고도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내면과 영혼을 성령의 빛과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죽음과 지옥으 로 인도하는 치명적인 죄요, 죄의 뿌리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 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만은 가장 드러나지 않으며 영혼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는 죄입니다.
교만은 단지 성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서 주님을 더 닮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는 뜻입니다. 교만은 영혼이 죽는 문제입니다. 잠언 18장 12절 을 보십시오.
잠18:12”사람의 마음이 오만(교만)하면 멸망이 뒤따르지만, 겸손하면 영광이 뒤따른다”(새번역)
영혼의 교만은 곧 멸망이요, 죽음입니다. 사망입니다. 그리고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적으로 만드는 것 이 교만입니다. 반면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교만의 영, 교만의 악한 생각에 사로잡 혀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본문에 몇 가지 힌트가 나옵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
하나님을 잊어버
림
신명기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게 되면 나오는 첫 번째 증상은 하나님 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주 중에도 하나님이 잘 생 각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 일, 내 업무, 내 가족, 내가 하나님 보다 사랑하는 그 어떤 것이 생각나지, 하나님은 잊어버립니 다. 하나님을 설령 잊지 않았다 해도 사실상 잊어버렸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찬양과 감사가 있는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찬양이 메마르고 감 격이 없다면 이미 교만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일 수 있 습니다. 교만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만하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하기보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마땅한 권리라고 여깁니다.
본문인 신명기 8장 12-13절을 보십시오.
신명기 8:12–13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이 있 고, 소와 양이 번성하여 재산이 증식되는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으로 인 해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교만해졌기 때 문입니다. 교만해진 증거는 바로 입술의 감사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 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무엇인가를 잘한 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의 증거입니다. 당신은 가정을 돌보거 나 자녀를 키우거나 회사에서 일할 때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 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다면서 그분을 의 지하지 않는 것 자체가 교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묵상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말씀 준비가 되지 않습니 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이런 마음이 듭니다.
'주님, 저에게 능력을 주셔서 설교 준비라는 해산의 고통을겪지 않아도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게 은혜다. 네가 너의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면 년 절대 나 를 의지하지 않을 거야. 넌 교만해질 거야.
그때 저는 마지막까지 말씀을 놓고 기도하게 하시는 이 자 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기도하거나 하나님 께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말씀을 전하게 된다면, 맡겨진 일을 잘하게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요, 재앙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늘 주님을 생각 하고 의지합니까? 교만의 증상은 하나님을 잊는 것입니다. 자 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무엇이든 잘 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
2. 자기 자랑
신명기 8: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우리가 가진 재물이 얼마든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잘 곳이 있다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런데 교만 의 영이 임하면 이것을 우리의 능력과 손의 힘으로 얻은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앞의 말씀에서 '나’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사용 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교만은 하나님의 위치에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교만은 결국 자기 영광의 추구요, 자기 숭배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이라는 제국을 이룬 후 왕궁을 거닐 며 자화자찬을 합니다.
다니엘 4:29–30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다니엘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권세를 주시지 않으 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왕은 착각을 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 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이러한 느부갓네살 왕을 바로 치셨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곧 멸망이요. 사망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적으로 만 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최근에 무엇을 자랑하고 싶었습니까? 우리가 자랑해 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오직 우리는 십자가만 자랑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
3. 자기 연민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은 전혀 달라 보여도 사실은 교만에서 나오는 두 가지 열매입니다. 존 파이퍼는 그의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에서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의 유사점을 이렇게 설 명하고 있습니다.
자랑은 성공에 대한 교만의 반응이다. 자기 연민은 고난에 대한 교만한 반응이다. 자랑은 "내가 이렇게 대단한 것을 성취했으니 나는 존경을 받아 마땅해"라고 말한다. 자기 연민은 "내가 이렇게 많이 희생했으니 나는 존경을 받아 마땅해"라고 말한다. • 자기 연 민이 교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력한 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봐주기를 원한다. 즉 자기 연민이 느끼는 결핍은 자신이 무가치 하다는 생각에서 나오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자기 연민은 갈채 받지 못해 상처 받은 교만의 반응이다.
다시 말해, 자기 연민은 갈채 받지 못한 교만의 반응'이라 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했는데 왜 박수를 안 쳐 주 지?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내가 이렇게 유능한데 왜 난 무 명인이지? 왜 날 알아주지 않지?' 교만의 또 다른 형태인 이자 기 연민은 아주 교묘하고 기만적이기에 이것이 교만인지 알아 차리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 및 동료들과 같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 칭송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애쓴 만큼 칭찬과 보상 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그 불편한 마음의 반응이 바로 자기 연민이고, 그것이 바로 교만의 한 형태입니다. 자신은 그런 대 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잊어버려 감사와 찬양이 점점 사라 지고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그 안에 이미 교만의 영이 자리 잡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입니 다. 이런 증상들이 있다면 결코 가만 놔둬서는 안 됩니다. 이것 들이 결국 우리 영혼을 서서히 죽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정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자의 특징
4. 자기 방어
영적 교만의 또 다른 증상은 자기 방어, 영적 경직성입니다. 어 떤 일을 판단하는 방식에 있어 자신이 옳고 남들보다 우월하 다고 믿기에 자연적으로 타인의 의견이나 견해에 대해 수용적 이기보다는 방어적이고 경직된 성향을 보입니다.
자기 방어와 자기 우월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본 질에 있어서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교만 하면 본질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나 뜻을 굽히지 않 고 자기의 옳음을 끝까지 고집합니다. 그럼으로써 결국 타인 과 자신을 분리하고 차별화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더 심해지 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규 정하고 비난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비판 에도 그저 잠잠하셨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한 다윗이 압 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난을 갈 때, 시므이의 거센 비난 앞에 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더욱 낮추 시려는 뜻으로 여겨 그것을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타인의 소리를 경청 하지 않고 그저 방어적으로만 대하려는 모습이 없는지를 철저 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교만,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교만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교만,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생각의 근원을 분별하고 말씀으로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가 유혹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물 며 우리 인간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렇기에 분별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러면 피한다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 지 않으면 마귀는 계속해서 그 사람을 생각으로 조종합니다.
처음에는 생각을 던져 주다가, 대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생 각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견고한 진이 되어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사로잡습니다. 그 영혼 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동행을 가로막는 일곱 가지 죄를 대적하는 시작은 대 상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적과 싸우려면 가장 먼저 그 대상을 파악해야 합니다. 적이 누구이며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 고, 그 공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적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생각, 악한 영, 곧 죄와의 싸움의 전쟁터는 바로 우리의"생각 입니다. 이 싸움은 바로 악한 생각과의 싸움이고, 이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를 분별하는 것이 기초이고 시작입니다. 우리 안에 있다고 해 서 다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가라지와 같은 생각 도 섞여 있습니다. 마귀가 심어 주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행동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생각 에서 악한 영을 처단하지 않으면 이 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가 없습니다. 생각의 입구에 파수꾼을 세우고, 이 생각이 어디 에서 온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5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 원수의 편이냐?"
수5: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 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새번역)
그의 정체를 분별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는 원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모두 검열해야 합니다.
너는 우리 편이나, 원수의 편이냐?
우리 머릿속의 생각이 다 우리의 생각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도 있겠지만. 그 생각 속에는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서울한 마 음, 불평의 마음, 원망의 마음, 바로 이것이 사탄이 몰래 심어 주 는 생각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생각들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리 고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마귀를 말씀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에바그리우스를 비롯한 사막 의 수도사들이 악한 생각과 영에 대적했던 방법입니다. 어느 날 에바 그리우스에게 교만의 영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나무랄 데 없고 불순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 교만의 영에게 맞서서 말씀으로 이렇게 대 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18:27).
자신을 뭔가 대단한 사람인 양 치켜세우는 교만의 영에게 말씀으로 대적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도움을 거부하고 승 리를 자기 능력으로 돌리려는 교만한 생각이 들자 그는 시편 의 말씀으로 응수합니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 리틀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시44:6-7)
이것은 정확히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칠 때 쓰셨던 방 법입니다.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주겠다며 헛된 영광 과 교만을 부추기는 사탄을 주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교만하게 하는 생각을 분별하십 시오. 그리고 말씀으로 대적하십시오.
교만,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2.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라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었고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베푸셨는지를 자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교만의 영과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가장 좋 은 방법은 들어올 틈도 없이 다른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 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입니다.
신명기 8장 14절을 보십시오.
신명기 8: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가 어떤 형편이었습니까?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죄의 노예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에 찌들 어 있던 자들이 우리입니다. 스스로는 그 죄의 사슬을 절대로 끊을 수 없어 죄 중에 망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바로 우리입니 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내셨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기억하라 고 하는 것입니다(신 8:18).
신명기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
예수님도 성찬을 베풀면서 "나를 기 념하라"(기억하라, 눅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19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것은 현재형 으로,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 순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사 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었고 얼마나 끔찍한 죄인이었는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우리는 도저히 갚을 수 없 는 죗값을 탕감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십자가를 볼 때마다 깊 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해질 수 있는 길은 십자가로 더욱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만은 그 힘을 잃습니다. 교만이 고개를 드는 이유는 우리가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합니다.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장례식을 여 러 차례 섬기다 보면 거의 매번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매우 길어 보이지만, 실상 한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풀과 같고 사라질 안개와 같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과 부 를 누린 자라 하더라도 영원한 육체는 없습니다. 누구나 죽음 을 맞이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지 조물주가 아닙니다. 장례 예배를 섬길 때마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과 저 자신을 제대로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과 자신을 말씀을 통해 묵상하는 것은 겸손 에 큰 유익이 됩니다.
교만, 어떻게 싸울 수 있는가?
3. 고난으로 인한 겸손의 옷을 입으라.
시편 119편을 쓴 기자는 자기가 어떻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 질 수 있었는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시119:67,새번역)
이전에는 잘못된 길,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 길, 곧 교만의 길 을 걸었지만,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고백합니다.
왜입니까? 고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 만을 꺾으시는 주요 수단 중 하나는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에 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영적으로 보면 교만 을 꺾고 겸손의 뿌리를 주님께 내리게 하는 복이 고난입니다.
그의 계속되는 고백을 보십시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 주님의 율례, 곧 주님이 지어 주시는 한계를 배 웠다는 것입니다. 율례란 나의 한계, 곧 나의 자리와 위치를 아 는 것입니다. 나는 피조물이고 그분은 창조주임을 아는 것, 나 는 빈 그릇이고 그분은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분임을 아는 것 입니다. 이 율례를 알면 자기 비하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냐하 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 곧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자녀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빚어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 품이요. 그릇임을 아는 사람은 자기 비하나 혐오에 빠지지 않 습니다. 또한 율례를 알면 교만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아담처 럼 하나님이 되고자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이성과 감정과 의지 에 신적 능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잠재력을 갖 고 있고, 또한 발휘합니다. 그러나 율례를 아는 자는 그래 봤자 자신이 인간이고 피조물임을 인식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 곧 질병으로 인해 괴로워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는 삼층천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 습니다. 그 가시가 그를 겸손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입니다. 고난은 교만을 이기고 겸손의 옷을 입게 하시는 하나 님의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교만을 이겨 내십시오. 교만의 영, 교만한 생각을 물리치고 피 흘리기까지 교만의 죄와 싸우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며 찬양하십시오. 그렇게 교만 의 영, 교만의 죄를 날마다 싸워 이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 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